4회1 <조선(朝鮮)의 노비(奴婢) 산책> 4회 일부다처제와 일부일처제(처첩제) 고려시대 500년 역사 중 400년 동안 일부일처제를 특별히 명문화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이를 고수했고 첩을 둔 경우도 소수의 귀족들이 아니라면 결코 흔한 현상이 아니었다. 하지만 몽골과의 전란으로 고려의 남성인구가 대폭 줄어들게 되자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. 13세기 후반 고려 충렬왕 때 결혼을 못한 많은 여성들이 자꾸 원나라로 빠져나가게 되어 심각한 인구유출 현상을 겪게 된 것이다. 이에 충렬왕은 고민 끝에 “우리 고려도 몽고 원나라처럼 일부다처제로 결혼 풍슴을 바꾸어 여자들의 유출을 막고 출산율도 늘려 인구를 증가시켜야 한다”고 했다.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개경의 부인들은 크게 분노(?) 했다. 결국 신하들은 모두 뒤로 물러났다. 그러나 고려말기 공민왕 때 일.. 2024. 1. 4. 이전 1 다음